소설 - 어떤 윤곽선 134. 언제까지 그렇게 울고만 있을

 그 집으로 이사 가고 제일 먼저 했던 중요한 일. 며칠 걸려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갔다.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을 떠나기 전 일 년 사이, 개인전 말고도 여덟 군데 기획전에 초대받아 자존감이 오를 만큼 올라 있었고 그 나라에 가자마자 유럽의 어느 비엔날레에서 상을 받은 직후였기 때문이다. 유명한 비엔날레도 아니고 작은 상이었지만.

 

 한국을 떠나기 며칠 전 크리스마스이브에 유럽의 ㅇㅇㅇㅇㅇㅇ에서 편지가 왔다. 작품을 보내라는. 꽁꽁 얼어있던 시댁의 계단참에 놓여있었다. 내가 평생 받았던 크리스마스 선물 중 가장 따뜻한 선물이었다.

 

 그 비엔날레에서 요구하는 기법이 드로잉과 프린팅. '선 전(展)'에 출품했던 작품처럼 하기로 했다. 아들이 학교 간 사이 교회의 빈 자리에서 드로잉을 하고 그걸 사무실에서 복사하고 잘라내고 꼴라쥬 하고 그 위에 드로잉...... 반복했다. 그러다 마침 운좋게(?) 복사기가 망가져 - 교회엔 미안했지만 - 복사할 때마다 세로 줄이 몇 개 생긴다. 재미있었다.

 

*

 

 내 차가 생기기 전이었다. 우리를 지원하는 교회를 '세운이'의 큰 아들에게 부탁했더니 데려다준단다. 60 세 할아버지가 아마존으로 떠나겠다 선언하기 전이었다. ㅇㅇ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더니 자신이 태워준다며 끝까지 우기신다.

 

 내 아들이 학교에서 오기를 기다렸다가 함께 갔다. 할아버지의 부인이 함께 탄다. 미술관에 도착했다. 당연히 아들을 봐주시는 줄 알았다. 미술관 관계자를 만나야 하는데 아들을 함께 데리고 가라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그러실 거면서 왜 나서셨을까?

 

 사무실 앞. 꼼짝 말고 여기 있어야 한다! 절대로 어디 가지 마! 엄마 기다려! 단단히 일러두고 사무실에 들어갔다.

 

*

 

 무슨 배짱으로 갔던 걸까. 말이 통하지 않아도 포트폴리오로 충분하다고 자신했었다. 다행히 영어가 통했다. 대충 훑어 보면서 그 사람이 그랬다. 작은 화랑에서 개인전 몇 번 하고,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 오세요. 맞는 말이었다.

 

 내가 그랬다. 우리나라에서는 외국 작가의 경우 본국에서 했던 경력을 전부 인정해 준다.

 

 그 사람이 실수로 필기구가 잔뜩 들어있는 필통을 바닥에 떨어뜨린다. 와르르~ 소리와 흩어져버린 모양새가 작은 난장판이었다. 나를 누군가 응원해주는 것만 같았다. 그 사람을 꾸짖는 것 같았다. 손님에게 그러면 쓰나! 친절하게 대해야지! 깔끔하게 거들먹거리던 사람이 몸을 숙이고 수습하느라 쩔쩔맨다. 그 나라 사람들 모두 어질고 따뜻한데, 이날 일을 이야기했더니 누가 그랬다. 자리가 높은 백인들 중에 인종차별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정리가 끝나고 몸을 일으키더니 표정과 말투가 달라져 있었다. 여섯 작품 해 오세요. 

 

 고맙다고 인사하고 밖으로 나왔다. 아들은 지루한 듯 창턱에 올라 유리에 몸을 바싹 비비면서  바깥 구경을 하고 있었다.

 

 '세운이'의 아들이랑 왔었으면 같이 놀아줬을 텐데. 할아버지 부부는 야외 카페에서 차와 간식을 들고 계셨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는 말, 진리다. 계산은 당연히 내 몫.

 

*

 

  '엄친'의 남편의 공장에 자투리 천을 얻으러 오라고 해서 갔다. 공장의 규모가 엄청났다. 160cm 폭의 천 한 필을 거대한 작업대 길이에 맞게 여러 겹 왕복을 하면 - 그런 다음 한꺼번에 재단을 한다. - 끝까지 못가는 자투리가 생긴다. 그 자투리가 한 구석에 잔뜩 쌓여있었다. 마음대로 가지란다.

 

 그걸로 대작이 가능했다. 우리가 살던 집의 구조 때문에 생긴 넓은 벽에 2m에서 3m 되는, 각각 크기가 다른 자투리 천 넷을 걸어놓고 동시에 시작했다. 그러나 하려고 앞에 서기만 하면 꼼짝할 수 없었다. 나 자신이, 내 마음이 고스란히 보였기 때문에. 나는 작은 우물 안의 더 작은 개구리였구나, 깨닫고 나니 힘들었다.

 

 아마존에 가기 전이었다. 그런데 그랬다. 그 넓은 나라의 전기를 모두 공급하고도 남아 이웃 나라에 수출할 정도로 엄청난 수력발전소. 광활한 수도와 수도의 어마어마한 국회의사당. 원주민 천막을 본 딴 현대적인 넓은 성당. 마이크가 필요 없게 절묘하게 설계된 건축기술, 못지않게 멋있는 시설과 조각. 식민지 독립운동의 역사를 기념하는 미술관. 건물 자체도 멋있었지만 안에 전시된, 세계 미술사의 흐름과 상관없는, 의식하지 않는 벽화도 훌륭했다. (우리나라에서 주목받던 내 또래 작가가 그 작품을 표절했던 것 같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특이한 구도가 거의 같다.)

 

 그 도시의 중앙 도서관. 얼마나 넓던지. 책 보다 건물이 놀라웠다. 넓은 나라에서 태어난 건축가만이 할 수 있는 설계였다. 중앙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비탈길은 기능면으로 편했지만 시각적으로 보는 사람을 압도했다. 편안하게 압도할 수도 있구나.

 

 일요일 예배시간, 교회에 앉아 있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아침에 같은 시간에 일어난다면? 지구의 한 시간마다, 경도 10˚ 마다 차례로 줄줄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겠지. 저 멀리 우주에서 지구를 24시간 바라보면 재밌겠다. 전세계 사람이 같은 시간에 교회에 간다면? 상상하다 그런 생각을 했었다.

 

*

 

 우물 안의 개구리가 어때서. 자신이 살고 있는 우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열심히 개굴개굴 울면 되는 거지. 새들은 짹짹이고, 나비는 팔랑거리면 되는 거지. 그러나 그땐 그걸 몰랐다. 그러지 못했다. 

 

 빠레뜨에 물감을 풀지 못했다. 벽에 매달아 놓은 커다란 천이 우주 같았다. 어떻게 감히 내가...... 그저 붓에다 맹물을 적셔 바르고 바르고, 마르면 또 바르고...... 맹물은 내 마음의 눈물이었다. 붓으로 울고 있었다. 언제까지 그렇게 울고만 있을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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