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어떤 윤곽선 107. 한 만큼의 보상을 받

 도대체 네 '남의편'이 하는 일이 뭐냐, 궁금하겠지만 그냥 얼버무리기로 한다. 그동안 내가 졸업했던 학교 등등, 고유명사 일부를 밝히지 않았듯이.

 

 이렇게 불편하게 써나가는 이유는 내가 작품 할 때 항상 중요하게 생각하는 보편성과 차별성의 문제 때문이다. 직업이나 지역, 어떤 보통명사와 고유명사를 대할 때 우리는 쉽게 선입견과 편견에 빠진다. '어린 왕자'의 터키의 천문학자가 민속 의상을 입고 발표했을 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던 에피소드를 떠올리기 바란다.

 

 얼버무리기를 하면서 마네(Édouard Manet)의 작품 "풀밭 위의 점심 식사(Le Déjeuner sur l'herbe)"가 떠올랐다. 어느 정도 신분을 가늠할 수 있는 옷을 입은 남자 둘과 대조적으로 거의 혹은 전부 벗은 여인들은 대략의 분위기만 드러낼 뿐이다.

 

 학생 때 처음 이 작품을 접했을 때 왜 여자만 벗었지? 이상하다는 생각은 잠간 스쳤을 뿐이었다.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La liberté guidant le peuple)의 여신, 어깨 부분을 노출 시킨 것도 그렇고 비슷한 예는 미술사에 넘치도록 많다. 여신을 그리던 서양문화의 과도기 현상? 나중에 찬찬히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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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주 수업 때문에 아이를 시댁에 맡기고 지방에 내려가야 했다. 전시회 등등 서울에 볼일이 많았다. 그때마다 아이를 데리고 산을 넘고 2차선 국도에서 가끔 지나가는 버스를 타고 경기도 광주 시외버스 터미널. 거기서 서울 마장동 시외버스 터미널. 시내버스 타고 노량진, 거기서 한 번 더 버스를 타고 시댁으로.

 

 마을을 벗어나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은 어른 걸음으로 50분 정도. 산이라고 하기엔 가파른 언덕이었다. 아이랑 셋이 함께 가면 한 시간. 나랑 단둘이 가면 더 걸렸다.

 

 요즘 산책 삼아 집 근처 동산을 한 시간 정도 가볍게 산책하면서 가끔 그때를 떠올린다. 왜 그렇게 힘들어했을까? 다시 생각해 봤다. 아이를 데리고 아이를 위한 용품에다 1박 2일 우리 부부 옷가지. 네 번 갈아타야 하는 버스. 가끔도 아닌 정기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 최소한.

 

거리에 비해 힘들 수 밖에 없었다. 제일 바쁘고 길었던 여정이 생각난다. 소품전 초대받고 마감 전날, 작품을 들고 액자 맡기러 화방에 가다가 후배들 구룹전에 들렸었다. 마침 화랑을 지키던 당번은 같은 과 4년 후배, '주황'의 친동생이었다. 작품이 다들 놀랄 만큼 좋았다. 끼리끼리 모이는군.

 

 갑자기 내 품에 품고 있던 작품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야, 너네들 작품 좋다. 내 께 부끄러워진다. 집에 가서 다시 해야겠어. 밤새야겠어. 그리 하이소.

 

 들고 갔던 작품과 같은 크기로 할 수 밖에 없었다. 화방에 가서 액자 맡기면서 물어봤다. 순서 바꿀 수 있을까요? 작품을 나중에 넣어주실 수 있을까요? 해준단다. 공방이 바로 가게 뒤에 있어서 가능했었다. 내게 친절했던 가게 아주머니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옆에 앉아있던 친구로 보이는 여성이 입고 있던 티셔츠의 악어그림이 생생하다. 이미지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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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어머니에게 하루만 더 아이를 부탁한다고 전화하고 집으로 달려갔다. 인사동에서 마장동, 마장동에서 경기도 광주 시외버스 터미널, 마을 버스를 내리고 집까지 동산을 뛰어서 넘어갔다. 대충 끼니를 때우고 밤을 새워 작품을 셋 만들었다.

 

 계단이 아니라 에스컬레이터가 아니라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헬리콥터를 타고 올라가 하늘을 날랐다. 작품이 그랬다는 거다. 마음에 들었다. 


 그 작품 중 하나를 모르는 사람이 사 갔다. 내 생애 처음으로 팔린 작품. 신기했다. 좋은 작품을 알아봤군, 그런 생각은 감히 못했고 내가 한 만큼의 보상을 받았군, 그래서 신기했다. 두고두고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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