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어떤 윤곽선 156. 우린 남남이 됐다. 아버지 산소

 지금 검색해 봤다. 49제는 불교의식이었다. 어쨌든 그날 다시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모인 사람은, 우리 유족과 기억해준 학교 관계자와 제자 몇 명.

 

 아버지는 길눈 어두운 나 혼자서는 절대로 찾아갈 수 없는 자리에 있다. 


 주차할 수 있는 공터 옆에 시멘트로 된 커다란 원기둥 모양의 쓰레기통은 갈 때마다 가득 차있었다. 그날, 쓰레기 더미 위에 어느 고인의 것으로 보이는, 불에 일부 타다만 앨범이 보였다.

 

 접착식 앨범이라 쉽게 타지 않았던 모양이다. 간직하기 싫겠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깨끗이 탈 때까지 지켜볼 수는 없었을까? 벌판 바람이 추워서? 추웠겠지. 춥다고 아무렇게나 해도 되나? 고인은 추운 날 더운 날 가리지 않고 수고했을 텐데. 자식 키우랴 살림하랴 평생을 수고했을 텐데...... 지나가다 얼핏 눈에 들어온 타다만 사진 속 고인은 미소가 많은 곱상한 할머니. 웃으세요. 찰칵! 웃으세요. 찰칵!

 

 후손들의 무심함 때문에 고인이 느꼈을 배신감이 전해졌다. 그 후, 나는 서류에 필요한 증명사진 외에는 내 모습을 찍지 않게 되었다. 셀카봉 들고 다니며 열심인 사람들 볼 때마다 그 쓰레기 통 앨범이 떠오른다. 무엇을 위해 사람들은 그토록 자신의 모습을 남기려 하는가?

 

*

 

 그날 헤어지기 전에 어렵게 용기 내어 새어머니에게 물었다. 집 문제로 불안해서 그래요. 고향 땅 주신다고 했는데 땅문서는 언제 주실 건가요?  내가 그 땅을 왜 줘! 내가 그걸 어떻게 샀는데!! 고생고생 학교 나가며 푼푼이 모아서 산 건데. 왜 줘!!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헤어졌다.

 

*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었다면.  집 문제 때문에 그 가격을 알아봐 달라 부탁했던 건 고향 그 땅 근처에 사는 친어머니. 9,000만원이래. 지금 약( x 5 =)45,000만원?

 

 그걸 주기 싫다면? 다른 걸로?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면서 초조했다. 장례식날 끝까지 함께 해주었던 친구, '주황'과 '일반화'는 전화로 같은 말을 했다. 특히 '일반화'는, 네 생각만 하면 밤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다 뺏기게 생겼어! 정신 차려!

 

 난 싸우기 싫어. 주기 싫으면 못 받는 거지. "이 바보야! 네 생각만 하니? 네 아들 생각도 해야지. 누군 싸우고 싶어 싸우냐?! 뺏기기 싫어서 싸우는 거지."

 

 '남의편'이 어디서 알아왔다. 제일 먼저 아버지 학교에 갔다. 연금 알아보러. (사실 연금은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다. 몰랐다. 도대체 그때는 누가 일러준 거지?) 직원은 처음 겪는 일이라며 기다리라고 했다. 처음 겪는 일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어찌나 창피하던지.

 

 집으로 가는 길, 속이 엄청나게 미식거렸다. 잠시 내려 숨을 골라야 했다. 집에 도착하고 '남의편'에게 그랬다. 못하겠어. 그냥 포기할래. 다 포기할래.

 

 그럴 거면 학교에 찾아가지 말았어야 했다. 남자들은 여자에 비해 입이 무거울 거라는 건 오해였다. 그 일로 알게 되었다. 그 직원은 아버지가 있었던 '같은 과' 교수에게 이 일을 전했고, 그 교수는 내가 졸업한 학교의 아버지와 '같은 과' 교수에게 전했고...... 아마 학회 소속한 모든 교수가 알게 됐을지도 모른다. 불효를 저지르고 말았다. 이미 엎질러진 주워 담을 수 없는 물.

 

 내가 졸업한 모교의 아버지와 '같은 과' 교수들은 아버지와 각별했다. 내가 입학하기 전에 아버지는 내 모교에서 일했기 때문.

 

 세상은 참으로 좁았다. ㅇㅇ디자인과에 '애교'가 많은 교수가 있다. 남편의 형이 내 모교의 '(아버지와)같은 과' 교수다. 장례식에도 물론 참석했을 것이고 나도 오며 가며 인사했을 것이다.

 

 ㅇㅇ디자인과 '보스'가 내게 그랬다. '애교'가 이상한 소리 하더라. '애교'의 시아주버니와 '같은 과' 교수들이, 네 돌아가신 아버지 부인은 여리고 세상 물정 하나 모르게 생겼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나갈지 걱정이라면서, 전처 딸과 사위가 돈 밖에 몰라 쑤시고 다닌다. 그러던데! 

 

 '보스'와 나는 친정 쪽에서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비슷한 이유로 진작에 친해진 친구 사이였다.

 

 '보스'의 이종사촌은 내 학부시절 판화 선생님이다. 외할머니가,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로 사윗감이 마음에 안든다고 반대하는 결혼을 엄마가 했기 때문에 집안에서 내놓은 딸이었다. 판화 선생님은 외할머니가 미국유학까지 보내줬다. 자신은 대학 입학금이 없어 도와달라 찾아갔을 때 거절당했다. 차비가 없어 먼 거리의 집까지 두 모녀는 걸어가야만 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다. 결국 입학금을 구하지 못해 입학할 수 없었다. 일년동안 엄마가 고생해서 입학금 모았다. 다음 해 다시 입시를 치렀다.

 

 '보스'는 '애교'에게 내 이야기를 해줬단다. 그 반대라고. '보스'와 친하지 않았다면 '애교'의 말 때문에 나는 그 학교에서 쫓겨났을 지도 모른다.

 

*

 

 아버지 돌아가시고 10개월 넘도록 아무 소식이 없었다. 속물이었구나. 나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속물이었어. 동생을 집에 오라고 불렀다. 동생은 현관에 들어서더니 인디언들이 행운의 부적이라고 들고 다니는 작은 꼬리를 매단 자동차 열쇠를 빙글빙글 돌리다 현관에 놓는다.

 

 차 샀어? 아니! 아빠 차. 넌 어떻게 네 맘대로......

 

 준비해둔 하얀 봉투를 줬다. 봉투 안에는 인감도장, 인감증명서. 포기각서. 편지가 들어있었다. 이거 전해드려. 그럼 잘 가.

 

 "제가 어렵다 보니 자꾸만 유산받을 생각에 이제나저제나 하루하루가 바늘방석 같았어요. 내 마음 편하고 싶어 포기합니다. 건강하게 안녕히 계세요."

 

 그러고 나니 마음이 편했다.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날, 전화가 걸려왔다. 내일 송금 하마. 다음 날 동생이 찾아왔다. 상속분 내역서가 들어있는 봉투와 내 인감도장. 그리고 70만원과 계산서. 이건 뭐야? 아버지 차값. 계산서 내역이 웃겼다. 수리비를 뺀 나머지의 1.5 : 1 : 1. 중에서 내 몫 1=70만원. 수리비를 누가 빼자고 했을까?

 

 도로 가져가. 차는 필요한 사람이 쓰는 거지. 다만 내게 미리 양해를 구했으면 좋았겠다는 거지. 무시당한 것 같아 기분 나빴어.

 

*

 

 그 후 우린 남남이 됐다. 아버지 산소도 미리 가거나 늦게 갔다.

 

 49제 지나 어버이날. 우리 세 식구가 집으로 찾아갔을 때, 경비 아저씨가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는 우리를 보고 소리를 지른다. 아버지가 그 아파트를 분양받아 이사한 후부터 일하는 아저씨. 모든 입주민 족보를 꿰는 아저씨다.

 

 "왠일이예요?! 이사 갔쟎아요!"

 

 "네?"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혔다. 그 정도로 내가 싫었구나. 함께 한 세월이 얼만데.) 저절로 말이 튀어나왔다. "계모거든요." 내 입으로 계모란 말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했다. 그냥 튀어나왔다.

 

 "아~ ."  아마 그 아저씨 입도 며칠 동안 바빴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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